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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내려갈 때, 아버지께서 좋아하는 문어를 하나 사들고 내려가기로 했다.

 

뭐, 꼭 아버지 드리기 위해서만은 아니고,

 

나도 오랜만에 쫄깃쫄깃 고탄력에 핑크빛 살가죽 새하얀 속살의 문어가 먹고싶었다.

 

대전은 내륙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살아있는 문어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 쪽에서 사가지고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대전 오정동 농수산물 시장에 가도, 살아있는 문어 구하기가

 

1+1 캘리포니아 통아몬드 세일하는거 사서 한봉지 딱 까서 오독오독 씹어먹으며 집에 가다가

 

보문산 청설모 무리에게 습격당해 빼앗길 정도만큼은 아니지만, 여하튼 쉽지않다.

 

가끔 5일장 같은 곳에 가면 한두마리 보이기는 하는데, 가격이 워낙 만만찮다. 소고기 사묵는게 더 이익일 것같은 느낌.

 

오징어랑 낙지에 비해서 왜이리 몸값이 비싼거니 이놈의 문어색히야?

 

이게 다 타코야끼때문이라고, 하늘하늘 춤추고 있는 가쓰오부시가 올라간

 

김이 모락모락나는 타코야끼를 쓸데없이 떠올리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수십분간의 웹서치끝에, 수원버스터미널에 있는 농수산물시장에서

 

살아있는 문어를 싸게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이 한몸 기꺼이 행차하기로 했다.

 

 

햇빛이 선명하게 나뭇잎을 핥고 있던 무더운 6월의 어느 날,

 

문어야 문어야 민둥머리 문어야 못생김 대명사인 오징어 보다는 니가 낫지않나 싶구나

 

의미 불명 노래를 흥얼거리며 약간의 불쾌지수를 탑재하고 수원 농수산물 시장으로 향했다.

 

수산시장 들어가자마자, 사서 두입 먹고 떨군 미니스탑 소프트아이스크림에 개미 달라붙 듯 

 

상인 아저씨 아줌마들이 들러붙어서 뭐찾냐고 호객행위를 해댄다.

 

이러다 또 호갱이 될 지도 몰라. 침착하게 아무렇지 않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나는

 

한 상인아저씨에게 아이컨택트를 시전하며 시크하게 말했다.

 

'문어 있나여'

 

붙어서 호객행위를 하던 아저씨와 아줌마 세네명의 눈빛이 다소 수그러든다.

 

실망한 눈치다. 몇몇은 얼음찜질하고 있는 초점흐린 동태의 눈이 오버랩된다.

 

이 호갱같은 녀석이 찾는게 문어라니! 젠장. 이라고 생각하는 듯 이내 몸을 돌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내게 아이컨택트를 당한 상인아저씨는 살짝 볼이 발그레해진 상태로,

 

'문어? 이리와봐'

 

라고 말하며 내 뒤쪽에 있는 가게로 데리고 간다.

 

그 곳의 상인아저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뒤로 60도 정도 젖힌 후,

 

반짝거리는 눈은 그윽하게 나를 바라보며, 2mm정도의 수염으로 둘러쌓여있는 두툼한 입술을 살짝 열며 말했다.

 

'어서와. 문어는 처음이지?'

 

그 가게는 전복과 게와 문어를 주로 팔고 있는 듯 했다.

 

문어가 들어있는 수조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대략 10마리 정도가 들어있는 듯 했다. 

 

'얼마만한거 찾아?'

 

아저씨가 생글거리며 나한테 문어체로 물었다. 오늘 마진 좀 많이 남기겠구나 하는 듯한 표정이다.

 

'그냥 작은거 찾아요. 키로당 얼마죠?'

 

'동해에서 막 잡아온 거고, 완전 싱싱해. 키로당 3만이야'

 

키로당 3만. 시세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나, 이제까지의 경험상 살아있는 문어는 대충 이 정도 가격인 것 같았다.

 

다만, 국내산인걸 강조하며 말하는 걸 보니 분명 시세보다는 조금 높여 불렀으리라.

 

'음.. 가장 작은 놈 볼 수 있을까염'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바로 수조에서 문어가 따로따로 들어있는 망을 두어개 꺼내서 살펴보더니

 

하나를 내 앞으로 가져와 보여주었다.

 

'이게 가장 작은건데 아마 0.5정도 나갈 것 같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중2정도 되어보이는 문어였다. 분명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으리라. 먹물이나 쏠 수 있을까.

 

트위터에 '왠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여름, 인간들에게 나의 다크스러운 먹물을 한껏 뿜어주어 흑화시키기 위해 잠시 항아리에 들어가주기로 했다. 나의 5번째 다리가 43개의 빨판의 힘을 인간들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다고 근육을 꿈틀거리며 나를 재촉한다. 후후. 내가 바로 동해의 문어시키인 것입니다.' 등을 적어놓았을 것 같다.

 

실제로 재보니 0.48kg정도 나왔다. 정신적 스트레스 및 운동부족으로 0.02kg가 줄어든 듯.

 

'이 놈은 뭔 크기가 꼴뚜기인지 오뚜기인지.. 조금 더 어른스러운 놈 있는지요'

 

아저씨는 다시 수조로 가서 거칠지만 능숙하게 다른 문어들을 꺼내서 슬쩍 슬쩍 살펴보다가, 이내 다른 한마리를 가져왔다.

 

꽤 크다. 2kg는 되어보인다.

 

1.33kg

 

아니다.

 

내 눈은 장식인것인가. 동태눈깔 어쩌구 하기전에 내 눈깔부터 챙겨줘야겠다. 검은콩과 블루베리좀 많이 묵기로 다짐.

 

'일쩜 삼삼.. 아주 그냥 정확하네. 4만원.'

 

삼삼하게 말하는 아저씨 입에서 나온 액수는 4만원.

 

'현금으로 할건데 좀 깎아주세요 형니임~'

 

한순간에 호갱같은 동생이 생긴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얼마면 되겠냐고 되묻는다.

 

'음... 3.5 어떤지요. 부모님 드릴건데..'

 

부모님 드릴거라는 대사를 날리며 수산시장 문어형님의 감정을 자극했다.

 

부모님이라는 단어에 내 기분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산시장 문어형님의 입술이 살짝 씰룩였던 것처럼 보였다. 

 

카멜리온은/는 감정자극 공격을 감행했다!

 

효과은/는 대단했다!

 

콜을 외치는 일시적 형님에게, 대전까지 가지고 갈거니까 아이스박스에 얼음 좀 채워서

 

유럽 배낭여행 갈 때 가방에 넣어 가져가는 국물 많이 담은 김치 반찬통처럼 꼼꼼하게 포장해달라고 부탁했다.

 

날이 찐빵 찌는 찜기 속처럼 미친듯이 더운 날이었기 때문에, 대전까지 버텨줄까 걱정도 되었지만,

 

이미 사기로 결정했으니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비싼 몸값 자랑하는 문어님을 담은 직사각형의 아이쓰빡쓰를 들고

 

다시 의미불명의 문어노래를 흥얼거리며 수원버스터미널로 향해 갔다.

 

 

20분정도 걸려 땀범벅이 되어 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형님 아니, 아저씨 왜이리 얼음을 많이 넣으셨나여. 젓돼봐 인가여.라고

 

괜히 형님계약 끝난 아저씨에게 화풀이를 하며 자동 매표기에서 표를 거칠게 뽑았다.

 

그리고 잠시 땀 좀 식힌 후 나는 대전행 버스를 타고 화물칸에 문어님도 탑승시킨 후 사이좋게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에 도착해서 집까지는 또 시간이 어느정도 걸렸다.

 

내가 들고가는 아빡에서는 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멀리서 누가 보면 포세이돈으로 오해할 정도. 나 포세이돈 아님요.

 

집에 도착 후, 얼음에 둘러쌓여서 여기가 에베레스트인가 북극인가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외치며

 

온 세상이 새하얀 곳에서 벌벌 떨며 외롭게 시망했을 문어를 망채 꺼냈는데,

 

오마나 이게 왠일이니

 

문어가 나 아직 살아있어 포기하지 말아줘.라고 외치듯 8개의 통통한 다리를 꿈틀거리며 웨이브를 추기 시작했다.

 

솰아있네

 

그래. 돈주고 사온 보람이 있구나! 돈값하는구나!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서 팔팔 끓인 후 문어를 바로~~~~~~~

 

풍덩!!

 

 

 

그리고 냉탕에서 열탕으로 갑작스럽게 옮겨간 문어는.

 

 

 

잘가

 

 

아 근데 딥따 크다.

 

1.33kg인데도 진짜 크다. 2kg는 훌쩍 넘어보이는데.

 

근데 갑작스런 온도변화때문인지 어떤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쁜 핑크빛이 아닌, 탁한 검분홍색 문어.

 

왠지 저주가 걸려있는 듯한 색.

 

하지만 쫄깃쫄깃 오동통해보이는 문어.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음.

 

정말 맛있는데요. 자갈치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네요.

 

 

살짝 데쳐서 다리는 냠냠하고 안익었을 머리와 배는 잘라서 문어탕을 할 예정!

 

다리하나 젓가락에 말아서 불 위에서 구워봐라.

 

머리부분은 안익었으니 아직 먹지마라.

 

쫄깃쫄깃 문어님하는 그렇게 모두의 뱃속으로 사요나라.

 

너무 쫄깃쫄깃해서 문어다리 씹는 소리에

 

옆집 아줌마가 요크셔테리어 안고와서 벨누르며 조용히 해달라고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의 맛있는 초여름 문어냠냠이었다.

 

by 카멜리온 2013. 6. 24. 2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