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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걱정과 고민에 빠져 비관적인 태도로 인생을 보내봤자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후회없는 삶을 산다고 자부하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고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나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이뤄 낸 성과에 있어서도 '누구나 다 할 수있는'것으로 여겨왔는데

 

내 자신에 대해, 그리고 내가 하는 행동들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남자는 역시 자신감이지. 자신감없이는 뭘 하든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거 아냐?'

 

'난 다른 사람들보다 못해'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난 우물 속의 개구리일 뿐이야'

 

'언제나 유리하게 해석하고, 합리화할 뿐이지'

 

라고 생각해왔지만, 남과 비교를 할 것이 아니라, 나'만'을 바라보면 되는 것이었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니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오늘, 이제껏 내가 과소평가했던 나 자신에게,

 

힘이 될만한 긍정적인 성과들을 생각하고, 써보려 한다.

 

말 그대로 부정적인 건 제외하고 긍정적인 것만.

 

과거에 열심히 노력했던 것들이 지금의 나에게 큰 힘이 되길.

 

 

 

 

오늘은, 그 중에서도 군대에 한해서 말해보려 한다.

 

군대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으로, 내게는 큰 의미가 있다.

 

군대에서의 2년은 많은 것을 주었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나는 강원도 인제 산 속에서 근무하였다.

 

반딧불도 한번 볼 수 있었고, 뱀과 까마귀, 고라니와 멧돼지와 너구리를 볼 수 있는

 

공기좋고 물 좋은 산 속 깊은 곳의 부대였다.

 

산으로 둘러쌓여서 민간인 보기가 쉽지 않았고,

 

그나마 주위에 있던 마을들도 2006년 수해에 사라져버려,

 

마을 사람들조차 모두 떠나버린 곳이었다.

 

부대 막사도 산사태때문에 사망자가 나왔었다.

 

이렇듯 열악한 환경 속의 부대였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대대는 포상휴가가 거의 없는 곳이었다.

 

포상휴가라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체육대회 우승중대, 선봉분과, M-60 집체교육, 의무병 집체교육, 분대장 위로휴가, 금연휴가, 태권도, 운전병 휴가, 사격우수

 

분대장휴가는, 분대가 그리 많지 않으니 분대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있어서 받을 수 없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태권도는 단증을 따면 2박3일 휴가를 받을 수 있었고, 사격도 20발을 전부 맞추면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공식적인 사격훈련에서 맞춰야하는데, 다 맞추는 사람이 정말 극 소수였고, 태권도 또한 단증 따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 외에 체육대회는 중대가 우승을 해야 하고, 우승을 해도 휴가증은 몇개만 나오므로 중대 인원 중

 

 중대 우승에 기여를 한 고참급 중 분대장 휴가를 받지 못하거나 포상휴가가 하나도 없는 병사가 받는 경우가 많았다.

 

선봉분과 또한 각 주특기(전공)별로 대대에서 중대끼리 대회를 펼치는 것인데, 우승을 해야 포상휴가를 받을 수 있으나..

 

우리 중대는 우승하는 꼴을 못봤다 --;; 그 엄청난 고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M-60집체교육과 의무병 집체교육도, 돌아가면서 교육에 참가했는데,

 

 이것 또한 그 교육에 참여하는 대대 인원(대대 총원 약 300명 중 교육참여인원은 한 기수가 20-25명 정도) 중 1등을 해야만 휴가를 받을 수 있어서 받기가 매우 어려운 포상휴가였다.

 

 

 

 

 

이렇게 포상휴가 받기가 어려운 곳이다보니..

 

분대장 휴가 + 집체교육 우승 포상휴가 + 금연 휴가 이정도로

 

3개 정도 가면 정말 포상휴가 많이 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기본적인 100일위로휴가, 1차, 2차, 3차 정기 휴가를 제외하고는 포상휴가를 1번정도 가는게 보통이었고,

 

그 한 번의 포상휴가조차 가지 못하는 병사도 대대 전체 인원의 20%는 될 정도의 열악한....부대였다.


 

 

 

난 운전병이었는데 우리 대대는 운행 또한 없는 곳이었던데다가, 운전병이 중대의 1/3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운전병의 3대 메리트인, 야간초병 없음, 행군 없음, 부대 외 운행. 이 세가지를 누릴 수도 없었던 곳이었다.

 

운전병 최악의 보직인, 포병운전병이었기에,

 

위에 언급했던 포상 휴가중, 누적 운행키로수 5000을 넘으면 받을 수 있는 운전병 포상도, 중대 역사상 받은 사람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포상휴가에 대해 길게 언급하는 이유는,

 

군대에서의 내 포상휴가 이력에 대해 지금부터 쓰려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관심없을 것 같지만.. 전역한지 6년이 다되어가다보니 정리해놓지 않으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기도 하고,

 

도입부에서 말한 것처럼 내 자신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그리고 블로그라는 자리를 빌어 자랑하기 위해 쓰는 것임. 

 

너무 솔직한가?..... ㅋㅋㅋ

 

사실 군대에서의 일은 까맣게 잊은 채 살고있었는데, 군대에서도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닫고, 쓰고 싶어졌다.

 

이것 또한 내가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가 되고, 내 성실성과 노력, 근성의 지표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송부 패밀리. 군대 사진이나 군 기밀 등이 적혀있는 수첩은 사진으로 올릴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됨>

 

 

 


 

이병 때 나는 짬이 안되기에 그 어떤 것이라도 상명하복에 의해 수동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는데,

 

일병이 되고나서 각 중대에서 몇명씩 뽑아서 교육을 시키는, 의무병 집체 교육에 나갈 순번이 되었다.

 

중대 병사들은 의무병 집체교육과 M-60 집체교육중 하나에만 나갈 수 있는데,

 

이는 포상휴가를 딸 수 있는 기회를 병사들에게 최대한 골고루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포상휴가 받기가 매우 힘드므로, 모든 병사들에게 어느정도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했다.

 

그 중, 나는 나보다 한달 위 선임과 동기들과 함께 M-60 집체교육이 아닌, 의무병 집체교육을 받게 되었다.

 

보통때처럼 일과를 하면서 틈틈이 모여 교육을 받으며 한달정도 지난 후에 여러 평가를 해서 성적을 낸다.

 

일반 병사라도 전시에 의무병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는 것이다.

 

이 교육을 받으면 오분대기조에서 의무병역할을 주로 맡게 된다. M-60 집체교육을 받은 인원은 당연히 M-60관련 역할을 주로 맡게되고.

 

CPR과 도수운반법, 부목법, 지혈법, 붕대법 등을 배우고, 각종 응급처치도구 사용법과 기본적인 의료지식을 배우고, 외우게 된다.

 

 대대에서 총 23명이 의무병 집체교육을 받았는데, 


여기에서 1등을 해서 처음으로 포상휴가를 받게 되었다.


포상휴가를 따기 위해서 다들 피터지게 공부해서 압박감이 장난 아니었지만,

 

나도 밤에 잠 안자고 연등하며 노력한만큼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이게 내 첫 포상휴가였다.


 

 

 

 

 

<군대 생활 2년동안 사용했던 수첩들>

 

 

 


이 집체교육이 있고서 한달 후, 의무병 보수교육을 하게 되었다.

 

이건 의무병 집체교육때 모였던 사람들이 그대로 모여서 다시 똑같은 교육을 받는 것인데,


성적을 내는 것까지 전부 동일하게 진행되되, 이 보수교육은 포상휴가가 주어지지 않는다.

 

말그대로 배웠던 것을 보수하는 교육시간일 뿐이다.


그런데, 대대장이 바뀌고 나서, 이번 보수교육부터는 집체교육과 동일하게 포상휴가가 주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열심히 노력했더니 1등이 되어 포상휴가를 하나 더 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2등과 1점차이로, 위험했다.

 

아, 여담이지만 이 때 나와 1점차였던 녀석은 동기인데, 며칠 전에 안양에서 결혼!!

 

첫 여자친구가 아내가 됨. 올ㅋ




어쨌든, 이렇게 포상휴가를 2개 얻고 좋아하고 있을 무렵,

 

그렇게 자주 있지는 않은, 부대 내 사격장이 아닌, 부대 외 전용사격장에 가서 사격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병때 군 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격 20발중 20발을 전부 맞춰서 또 포상휴가를 하나 받게되었다.


그 외에는 보통 18-19발을 맞고, 20발을 맞은 적은 유일무이하게 이 때뿐이었다.

 

다 맞추면 정말 기분 째지는디. ㅋㅋㅋ

 

 

 

 

 

<군복무 시절, 고참과 간부들의 갈굼과 힘든 일과와 훈련에 버텨내기 위해 수첩에 써놓고 항상 보았던 글귀.

 

마지막에 추가한 10번이 인상적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왕고=최고참>

 

 

 

 

 

그리고 나는, 일병 달고부터 금연을 시작하여, 금연휴가에 도전했다.

 

금연 휴가는, 6개월간 금연을 한 사람에게 6박 7일의 휴가를 주는 것이다.

 

검사는 2주 정도에 한번 병사들의 금연을 유도, 장려, 촉진하려고

 

군대로 찾아오는 보건소 직원들이 병사들의 피를 채혈해서 금연 상태를 체크해서 금연 상태를 확인한다.

 

이병 때는 눈치보여서 금연휴가에 도전할 수 없었지만, 일병되고 바로 금연모드 전개. ㅋㅋㅋㅋ

 

그 때는 이병은 혼자서 PX도 가지 못할 때였으니, 금연휴가에 도전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일병쯤 되야 내무실 내에 앉아있을 때 관물대에 고참들 안볼 때에 한해 살짝 기댈 수야 있지....

 

어쨌든, 일병 때, 그렇게 금연에 성공해서 금연 포상휴가도 얻었다. 무려 6박 7일!!!! 굿!!!!

 

아 근데 내가 딴 직후에 금연휴가 너무 길다고 해서 4박 5일로 하향조정되었다. ㅋㅋㅋㅋㅋ 난 럭키가이!!!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완전히 담배를 피지 않게 된 것도 군대에서 금연을 해낸 덕택인가 싶다.

 

 

 

 

 

<1차 정기휴가때 먹고 싶었던 것들. 생각날 때마다 꼬박꼬박 적어놓았다.

 

상근예비역, 공익근무요원 등은 이 기분 모르겠지. 1차 정기나가면 꼭 이걸 이걸 먹고싶어!! 진짜!! 라는 그 절실함을>

 

 

 

<실제로 1차정기 휴가 때 먹은 것들>

 

 

 

 

군 생활 1년이 지났다.

 

내 바로 윗선임이 비만인데다가 허리디스크라(군대 어떻게 온거지)

 

내가 일병때 의병제대를 하는 바람에, 나는 상병을 달자마자 분대장을 하게 되었다.

 

내 윗윗선임은 나랑 군생활 1년차이나는, 일명 아버지군번이었기 때문이다.


분대장을 하게 되면 이번에는 사단급에서 모여서 교육을 하는, 분대장 집체 교육에 참석해야 한다.

 

분대장 집체 교육은, 말그대로 분대장들이 모여서 분대장 역할에 필요한 교육을 받는 것이다.

 

이는, 대대급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훨씬 큰 사단급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내가 분대장 집체교육대대로 파견갔을 때는 사단의 각 대대에서 모인 분대장들이 총 187명이나 되었다.


분대장 집체교육에서는 일주일?정도간 그 부대에서 다른 대대의 갓 분대장 단 병사들과 함께 지내면서


여러가지 병기술을 교육받고 습득하게 되며 각각의 코스에서 점수를 부여받게 된다.

 

훈련소에서 하는 모든 것들에 몇개를 추가적으로 더 배운다고 보면 된다.

 

소양평가, 북한군전술 이론평가, 분대전투기술-실습/이론, 독도법, 위장법, 제식, 훈육점수, 화생방, 사격, 각개전투, 행군

 

등등...

 

모든 것들을 수행하고 바로 평가받아 점수를 받는다.

 

다른 대대 병사들과 있다보니 서로 위아래가 없어서 편하게 지내게 되기때문에,

 

이전에 이 분대장 집체교육을 갔던 같은 중대의 고참들에게 들은대로, 열심히 하진 않고 빈둥빈둥 지낼 생각이었다.


내 번호는 187명중 2번...!


그런데 내 옆에 있던 1번 병사가... 이름이 이제는 기억이 안나는, 남자라면 이름 들으면 알만한 어떤 랩퍼였는데,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상태에서 군대에 왔었다. 그 당시 아마 27살..이었던 걸로 기억.

 

등 뒤에는 엄청나게 커다랗고 화려한 문신도 있었던 랩퍼 형이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정말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제까지 너무 막 살아서 군대에서 열심히 하겠다고, 같은 내무실을 사용하는 다른 대대 병사들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겉모습과 달리 그의 노력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밤에도 랜턴 켜놓고 혼자 공부하고, 연습하고 하는 그의 모습.

 

 

 


 

우리 대대에서는 이 분대장집체교육에 별 생각없이 애들을 보내고 있는데,


다른 대대에서는 분대장집체교육 각각의 평가요소나 각종 이론시험 등에 대한 정보정리 및 족보제조 등을 통해

 

집체교육 가는 병사들을 모아서 사전에 교육시켜 보낸다고 한다.


알고보니, 이 분대장집체교육이 각 대대의 평가지표 중 하나라고.

 

그래서 각 대대에서는 대대장 지시로 이 분대장 집체교육에 사활을 거는 곳이 많았던 것이었다.

 

 

 

 


그걸 그 1번에게 듣고서 살펴보니, 각 내무실마다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같은 내무실을 쓰는 2개 분대, 약 20여명 중 절반 정도의 병사들도 좋은 점수를 얻기위해 어느정도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었다.

 

친해진 다른대대 분대장아저씨한테 최상위 7명에게 포상휴가를 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7명이나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나도 투지가 불타올랐고, 


그 이후부터, 분대장 집체교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뭐든 열심히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등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1번 랩퍼형은 항상 자신감이 넘쳤고, 자신이 1번이니까 1등을 할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에 응하여 나는, 장난식으로 '그럼 난 2번이니까 형 따라 2등해야겠네'라고 말하곤 했는데,


행군을 마지막으로 분대장 집체교육 수료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정말 내가 전체 2등을 하게 되는 상황이 일어난 것...!


나조차도 깜짝 놀랐다. 기껏해야 20등 이내에나 들어갈 것 같았는데 2등이라니..

 

그래서 수료식 때 앞에 서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ㅋㅋㅋㅋㅋ굿

 

 

 

 

1등?


1등은 당연히...


그 1번 랩퍼형


....이 된건 아니었고, 그 형은 4등을 했다.


7일간 교육을 받으면서, 아무리 187명이라고는 해도 분대단위로 움직이다보니,

 

성적이 꽤나 괜찮은, 순위권에 들만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곤 했는데,


1등은 전혀 레이더에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았던, 처음 듣는 전혀 알지못하는 병사였다.


특이점이 있다면, 아니, 이 특이점을 들으면 누구나 납득할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이 1등인 것에.


뭐냐면... 서울대생이었다. --;


 

 

 

 

 

 

 

그런데 이 병사는 수료식 전날 마지막 평가코스인 행군 때 초반에 쓰러져서 계속 의무실에 있었기에 수료식에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얼굴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누구지...


그런데 마지막 행군 때는 이미 그 전까지의 모든 교육들에 대해 평가 점수가 내려진 후인데다가,

 

마지막 행군은 점수에 포함되지 않기에, 그것을 노리고 행군을 일부러 안했을 가능성도 높다.

 

마지막 행군이 점수에 포함되지 않된다는 것은 나도 행군 도중에야 정보에 빠삭한 분대 다른 병사에게 들었다.

 

역시 대단하군 서울대생..!!


 

 

그리고 한가지 더 흥미로웠던 것은, 상위권 7명 중 3명이 우리 분대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분대가 1번부터 12번까지인데, 1번 랩퍼형과 나와 더불어 상위 7명에 든 사람은 7번이었던 병사.


이 병사는 분대장 집체교육을 주최하고 있는 이 부대 출신 병사로, 간부들과 꽤나 친하고,

 

이미 몇주간 분대장 집체교육 대비 사전교육을 받고 온, 꽤나 차분하고 공부도 잘하는 병사였다.


어쨌든, 상위 7명 중 3명이 우리 분대에 있을 정도니, 분대단위 점수에 있어서는 우리 분대가 꽤 좋은 점수를 받았음에 틀림없다.

 

운이 좋았다. 럭키가이~~~~


분대장 집체교육에서 사단장에게 직접 표창을 받고 대대로 돌아온 나는, 대대장에게서 또다시 포상휴가를 하나 더 받게 되었다.


대대 최초로 분대장 집체교육 순위권 안에 들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분대장이 되면 분대원들 관리에 이것저것 할 것이 많아진다. 책임자, 관리자의 역할>

 


 

 


상병 때, 분대장을 달면서 수송반장도 하게 되었는데, 수송반장은 수송부(운전병&정비병)의 왕땅이나 투땅이 맡게 된다.


그리고, 우리 대대에서는 위에 언급했던 대로, 분기에 1번씩 '선봉분과 경연대회'가 열린다.

 

내가 일이병 때 총 3번의 경연대회를 치뤘었는데


그 살벌하고 대단한 고참들이 직접 참가하며 진두지휘했지만 4개 중대에서 단 한번도 1등을 차지한 적이 없었다.


그건 내가 수송반장을 달고나서 처음 맞이했던 경연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과가 끝나고 개인정비시간에도 모여서 애들을 교육시키고, 연병장에 올라가서 이것저것 연습하고 참가해도


트레일러 파킹, 군용차량 정비-고장배제, 정비이론 필기, 바퀴 체인치기, 호루치기 등 총 5가지 이상의 종목 중, 

 

몇가지는 좋은 점수를 받았어도, 나머지에서 죽쒀버려서 1등을 놓쳤다.

 

 

<후임들이 얼마나 잘 알고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만든 문제들 예시>

 

 

<수송반장 때 조금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들이 힘들었을지도.>

 


 

 

그런데, 그 다음 경연대회 때, 이번에도 필사적으로 개인정비시간에 후임들과 열심히 연습해서,


나는 트레일러 파킹, 정비이론 필기에 참가하였고, 나머지 종목에는 그에 적합한 다른 후임들을 참가시켰는데, 


그 때 처음으로, 우리 중대 수송부가 다른 중대들을 누르고 선봉분과 경연대회 1등을 하게 되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보이지만.. 이 경연대회는 매우 큰 행사이고, 그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분대장 집체교육에서 2등했을 때보다 몇배는 더 감격스러웠던게 경연대회 우승이었다.


다른 주특기들은 선봉분과 경연대회에서 중대 1등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속한 수송은 항상 1등을 못해서 간부들의 눈치를 많이 봐야했었기 때문이다.

 

일과시간에 수송부 인원을 빼갈 때도 중대에서 수송부인원을 많이 열외시키지 못할 정도였으니...

 

 실적이 좋지않은 부서의 부서장, 혹은 실적이 좋지못한 팀의 팀장의 느낌이랄까...


어쨌든, 후임들과 합심하여 선임들도 이뤄내지 못했던, 중대 우승을 하게 되었으니 매우 기뻤다.

 

사실, 나는 지금 현재도 그렇지만 뭐든지 혼자서 다 해내려는 성향이 강하고,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불안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인데,

 

이 선봉분과 경연대회 우승은,

 

다른 사람들과 합심해서 좋은 성과를 이뤄냈기에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지금도 팀 프로젝트같은거 하면 혼자 하는게 더 편하니...

 

상호 의사소통과 토론, 협력의 능력을 키워야하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다.

 

이 때 받은 휴가는 당연히 후임들에게 전부 나눠주었다.

 


 

 

 

 

 

 

 

그 외에는 분대장을 달았기에 받은 분대장 위로휴가와,

 

대대장이 연설하는 반기집중 정신교육 때 대답하여 받은 반기집중 포상 외박,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나가서 우승해서 받은 스타크래프트 우승 포상 외박,

 

대대창설 체육대회때 받은 대대창설 체육대회 면회 외박 등도 받았고,

 

자대 배치 전, 야전수송교육단에서 성적 우수로 대형차량 운전병 대표로 표창을 받아

 

이등병때 100일 위로휴가를 4박5일에서 5박6일로 늘릴 수 있는 야수교 특박 등

 

많은 포상 외박도 받았다.

 

 

 

<후임들과 사진. 수송부 공사 중에 머리 다쳐서 붕대하고 있을 때...>

 

 

 

<병장 혹한기 훈련 때>

 

 

 

마지막으로는..

 

말년병장 때 고생을 좀 했는데, 중대가 전투력측정을 하게 되어 휴가 제한이 걸린 것...

 

한달 넘게 모든 중대원들이 화생방, 사격, 체력측정, 구급법, 정신교육 등을 밤에 잠도 못자가며 연습해야했는데,

 

전투력 측정날, 보통 병사들은 랜덤으로 1개 종목이나 기껏해야 2개종목 걸리는데,

 

나는 혼자 3개 종목이나 걸려서 화생방, 사격, 구급법을 모두 하게 되었다.

 

아... 그 때 생각하면 아직도 토나오네..

 

그래도 다행히 3개 모두 내가 자신있어하는 것이었다.

 

역시 난 럭키가이 ㅋㅋㅋㅋ

 

구급법은 이미 의무병집체교육과 보수교육에서 신물나게 했던거고,

 

사격도 만발은 힘들어도 18발 이상은 꼭 나왔고,

 

화생방도 방독면-보호의-보호장갑-전투화덮개 벗고 입기를 한달동안 몇백번이나 반복했었으니...

 

다행히 이 3개 모두 좋은 성적을 받게 되어 중대 전투력 측정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고

 

덕분에 중대장에게서 포상휴가를 하나 더 받게 되었다.

 

 

 

 

 

 

결국..

 

의무병 집체교육 포상휴가 4박5일

의무병 보수교육 포상휴가 4박5일

사격우수 4박5일

금연 위로휴가 6박7일

분대장 집체교육 우수 4박5일 

분대장 집체교육 특별 4박5일

분대장 위로 4박5일

전투력측정 위로 4박5일

 

8개의 포상휴가를 자력으로 따내서 갈 수 있었고,

 

나는 우리 중대에서 포상휴가를 가장 많이 받은 병사로 기록되었고,

 

전역후 2년하고도 4개월이 지난 2011년에 부대에 중대와 수송부 간부들 만나러

 

잠깐 찾아갔을 때도 아직도 그 기록은 그대로였다 ㅋㅋㅋㅋㅋㅋ

 

지금은 바뀌었을려나.

 

 

 

 

<후임들과 1박2일 스키장. 정말 재미있었다.>

 

 

 

전역 날에는... 한 후임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었다.

 

 

 

 

이 편지를 읽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버스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군대에 있던 2년동안 정말 여러가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일이병때는 깜깜한 새벽에 눈이 2-30cm는 덮인 땅을 포복으로 기어다녀야 하는거나, 

 

허리 한번 피지 못하고 손에 물집 다 잡힐때까지 미친듯 하수구 흙을 삽질로 퍼내는게 일상이었고, 툭하면 집합...

 

 상병장때는 책임져야 할 일도 많고 간부들과 부딪히는 경우도 많았고...

 

.....물론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고, 재미있었던 일도 매우 많았다.

 

새로온 포대장이 스타를 좋아해서 타이틀 걸고 스타한 적도 많았고,

 

 군대체질이다보니 간부든 고참이든 후임이든 재미있게 잘 지냈다.

 

훈련이든 일과든 재밌다고 생각하면 정말 재밌게 보낼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별 생각없이 '언젠간 끝나겠지' 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틴거지 뭐.. 별거 있나. ㅎㅎㅎ

 

지금은 전역해서인지, 아니면 가장 가까운 병장 때 기억이 더 잘 나서 그런지, 아니면 걍 미화/왜곡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군대는 꽤나 좋았던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ㅋㅋㅋㅋ 뭐지. 다신 갈 일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건가.

 

 

 

뭐, 실제로 군대는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공부만하고 학교만 다니던 철없는 녀석들이 처음으로 상하위계질서가 확실한 사회로 진입하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아랫사람을 관리해야하는 책임감을 가진 위치까지 착착 가는 경험을 2년이내에 할 수 있다니.

 

군대를 찬양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확실히 잊을 수 없는, 인생의 거름이 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물론 그런거 나중에 사회에서 다 경험하게 되겠지만서도 ㅡ.ㅡ;

 

그 외에도 이 세상엔 정말 별별 특이한 사람 많구나를 느낄 수 있었고(성선설에서 성기호설로 바뀜 ㅋㅋ)

 

전혀 접해볼 수 없었던 여러가지 기술, 인맥 등을 포함해서 정말 많은 걸 얻었다.

 

다만 거기에 들어간 '시간'이 조금 아쉽다.

 

2년동안 얻은 것들은, 잘 따져보면 1년 정도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20대에서의 2년은 참 금같은,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걸 몇년 전부터야 절실히 깨닫고 있다. ㅠㅠ

 

 

 

어쨌든,

 

그동안 잊고 있었던 군대 생활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많은 포상을 얻어냈고, 나름 괜찮은 군생활을 보냈던 만큼,

 

나는 충분히 자신감과 자기효능감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세상은 넓고, 그만큼 뛰어난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많다.

 

하지만 그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

 

가장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남은 남이고 나는 나일 뿐이니까.

 

 

너무 자기 자신을 자책하지 말고, 자기모멸 하지말고, 과소평가하지 말고,

 

더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

 

 

근거없는 자신감, 미칠듯한 열정을 가지고

 

즐기면서 노력하는 후천적 천재가 되자.

 

 

by 카멜리온 2014. 12. 2. 16:40